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로 인하여 세계는 몸살이를 앓고 있다. 일본에서는 6월5일까지 긴급사태를 연장을 하기 위하여 조정작업에 들어갔고, 미국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기관이 공표한 것을 보면 11월 미국대선에 코로나19영향이 67%나 된다고 한다.
과연 이 코로나 문제로 세계의 화제는 코로나로 묶어 있어서 옴짝달싹 못하는 것이 우리들이 풀어야 할 숙제인 것 같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묻는 것은 무엇인가
현대사회는 많은 과학의 발달로 불편한 것이 없을 정도이다. 우리가 낯선 지역을 찾아 갈 때에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그리고 무엇인가 알고 싶으면 구글에서 검색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저출산고령화로 인하여 일손이 부족한 것을 로봇으로 대처하는 곳이 늘어 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중국에서 온 코로나에 맥을 못추는 현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코로나는 숨길 수 없는 사실은 무엇인가
코로나에 무방비 상태에 미・중 문제에 새로운 불씨가 되어 원인과 처방을 놓고 싸우고 있다. 이 원인을 보면 좀 더 빨리 중국이 코로나에 대해서 정직하게 이야기하지 못 한 것과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에 대한 것을 과소 평가하고 대응을 철저하게 못한 것이 지금 전세계에 감염자가 100만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도 중국에 의존한 것들-일상문자나 알루미늄, 인공호흡기, 마스크 그리고 항생물질-이 있다고 드러났다.
요즈음에는 가장 먼저 코로나 대책을 위한 방편으로 국경을 봉쇄했던 북조선 김정은 위원장도 4월15일 김일성 탄신일에 나타나지 않자 많은 루머가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코로나 하나의 병균체로 인하여 인간의 한계와 비밀주의가 밝혀 지고 있다.
코로나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최근에 와타나베 테쯔야씨 작가가 쓴 ‘신형코로나공황후의 세계’를 읽고 많은 것을 공감했다. 냉전종결에서 글로벌 시대에 오는 이 때에 일본은 헤세이시대였다. 헤세이시대에는 베르린의 벽이 붕괴 되고 독일이 통일이 되었다. 이 의미는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에 승리한 후에 사람ㆍ물품ㆍ돈을 나라가 관리하던 시대에서 국경을 넘어 자유스럽게 움직이는 민영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하여 무역마찰과 왁진개발하는 것조차 협력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코로나로 인하여 필요한 마스크와 티슈가 부족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미국과 일본은 국가지원을 해서라도 중국에 있는 공장을 자국으로 돌리는 분위가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준비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일본은 지금 레아시대다. 최근에 ‘히라가나로 읽으면 알 수 있는 일본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일본의 근본신은 한국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레아시대는 이웃과 이웃, 나라와 나라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 같다.
몇년전부터 사람들은 공생과 공영에 대해서 많은 세미나를 열기도 하고 간담회를 하는 분위기다. 진정한 공생과 공영의 관계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숙제로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선각자의 예언을 들어야
요즈음처럼 문선명 총재가 발표한 원리강론의 책 구절이 생각이 난다. “군국주의시대에 뒤이어 온 것은 민주주의시대였다. 그런데 군주주의시대가… 장차 메시아를 왕으로 모실 수 있는 왕국을 건설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가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이 사회를 깨뜨리고 메시아의 왕국을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민주주의를 세운것이다”(469)
“…민주의적인 자유를 찾아 인간의 본성을 더듬어 나아가게 되며, 누구나 이러한 사회주의적인 생활체제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의가 이러한 것을 요구하게 되면 민의에 의한 정치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최후에 가서는 하나님을 중심한 사회주의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472)
이 말씀을 새겨보면 우리가 풀어야할 숙제가 여기에 나오는 것 같다. 국가와 국가, 백성과 백성이 자유왕래하며 경제벽과 더불어 정치벽도 없이 살 수 있는 그런 세계를 위하여 우리가 준비하여야 할 것 같다. 거짓이 없이 함께 사는 하나님 아래 한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거기에는 공생과 공영과 공의로운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위정자와 학자와 종교가들이 뜻을 모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풀어가야 할 가장 큰 숙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