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한 달도 남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보니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 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었다. 한 해를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부문별로数로 정리된다. 그렇다며 수라는 것은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고 물어 본다.
에게 해안에 사모스(Samos)라는 조그만 섬에서 피타고라스가 태어났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학의 원리야말로 만물의 원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수학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은 영혼의 정화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세부류에 대하여 정리하였다고 한다. 첫째는 물건을 사거나 팔거나 하여 이익을 취하는 자이고, 둘째 부류는 경쟁을 위해, 승리를 구하는 자이고, 마지막 세번째 부류는 구경하러 가는 사람들, 즉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반성하고 분석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학설의 영향을 받은 플라톤은 ‘영혼의 중요성, 영혼의 세 부류, 형상의 개념 및 이데아와 관련된 수학의 중요성’ 등이라고 한다.
평화통일연합회의 수에 대한 발표
12월9일 평화통일연합전국회의를 했다. 그 때 담당자들이 수에 대한 발표를 하라고 부탁했다. 가장 많은 내용이 한 해를 돌아보며 자신이 걸어 왔던 발자취였다. 민단과 총련 사람들을 만난 것과 타단체와 역사탐방을 하던 것들을 예를 들며 발표하고 계셨다. 그리고 어떤 분은 수와 수리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분들도 계시고 한국과 일본사람이 좋아 하는 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분도 계셨다. 결국 수라는 것은 자신에게 의미가 있든 없든 하나의 방향으로 가는데 정리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2020년에도 개인목표와 자기가 맡은 역할을 승리하기 위해 달려오신 그분들에게 박수를 쳐드렸다.
무엇이든지 사각지대가 있다.
100년예측(죠오지 후리도만)의 분노는 내는 역사를 바꿀 수 없다. 역사를 바꾸는 것은 힘이다. 힘은 분노에 의해 강해지만, 지리, 인구동태, 과학 기술, 문화에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최근 미국의 대통령 선거의 공정성이 화두되었다. 여론으로 볼 때 바이든 대통령 후보가 유리하다고 한다.
4년 전에는 러스트 벨트(Rust Belt)인 펜셀베이니아,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인디애나 등 미국의 오대호 인근의 주에 승리를 하였다. 이 지역들은 과거 철강과 자동차 등 제조 공업지대로 번영을 누린 스틸 벨트(Steel Belt)였다. 이 지역이 제조업 퇴조로 ‘녹슨지대’로 변화하여 First America가 통하였다. 그러나 4년후에는 과거 흑인들이 노예제도로 피해를 입었던 것들이 백인들도 마음으로는 원죄 같은 것이 있다. 이런까닭에 범죄자 체포과정에서도 흑인 범죄자의 목숨은 귀하고 백인 경찰의 목숨은 그렇게 귀하게 여기지 않는 상황이다. 또 동아일보를 보면 아시아계가 선거에 큰영향을 미치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 내 아시아계 유권자 수 변화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참고로 유권자 수는 중국257만6000명, 필리핀 195만6000명, 인도186만100만명, 베트남 129만1000명, 한국94만4000명 그리고 일본 53만명 이라고 한다. 이런 변화를 읽지 않은 결과 바이든이 승리한 것 같다. 그러나 최종의 판단의 결과는 아직은 예단은 할 수 없지만 수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선거전략도 대중동원보다도 코로나 변화에 맞추어 SNS를 통해 선거전략을 폈던 바이든의 전략이 통한 것 같다
이 시대의 흐름은 무엇인가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소수인종우대입학
정책이라고 한다. 대학 입학 뿐만아니라 여러 가지로 그들은 흑인들에게 배려 정책을 폈다. 그러나 배려의 역설이 있다. 배려를 받은 당사자에게는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들 중에 자수성가한 자들은 오히려 그 제도가 오히려 자조ㆍ자립을 헤치는 일이라고 한다.
이 시대는 새로운 흐름이 무엇일까? 미국에도 흑인이 정치화 되어 가고 있고 아시아계가 대통령의 당락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 준 미국의 선거의 결과를 통찰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코로나19 이후에 급속도로 문화와 생각에 변화를 주는 것 같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깊이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시대에는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좀 더 맑고 티없이 순수한 삶을 요구하는 것 같다. 세상의 흐름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섭리에 맞추어 세상의 변화에 예의주시하며 대응책을 만들려면 수의 개념이 우리의 삶을 정리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 등한시하였던 것들을 다시 고찰하며 사는 자 만이 이 시대의 문화와 변화를 이끌어 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